헤이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교엔의 역사.
구게마치로서의 번영, 황폐, 그리고 부흥하기까지.
교토교엔이 있는 교토 분지는 하천이 빈번히 범람하는 땅이어서 느릅나무과 낙엽활엽수를 중심으로 한 식생(야마시로 벌판)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. 헤이안 시대 (794~1185) 이후 범람원 축소 등을 배경으로 현재 교토교엔이 있는 장소에 천황의 거처인 고쇼, 나중에는 고쇼를 중심으로 한 구게(일본 조정에 봉직한 귀족·상급 관리)의 저택들이 들어서는 ‘구게마치’가 형성되었습니다. 일본의 권위의 중심이었던 동시에 천황을 둘러싼 구게의 문화가 꽃핀 장소였습니다.
메이지 시대(1868~1912)가 되면서 구게마치는 메이지 유신・도쿄 천도에 따라 급속히 황폐해졌습니다. 이를 한탄한 메이지 천황의 발의에 따라 구게마치 터를 고쇼의 외원인 교엔으로 정비하는 ‘대내보존사업(大内保存事業)’이 시작되어 공원 길 정비와 교토 시민 등 일본 전국에서 헌납한 나무를 포함하는 식수가 이루어졌습니다. 다이쇼 시대(1912~1926) 초기에는 다이쇼 천황 즉위(다이쇼 대례)에 맞추어 교엔 내를 대규모로 개수하여 가지런해진 넓은 차마도(車馬道), 나무 사이 공원 길, 사방으로 보이는 연이은 산의 모습 등 오늘날의 교엔다운 풍경의 기초가 이루어졌습니다. 150년의 세월에 걸쳐 교토 시가지 최대 규모의 수림지가 형성되게 됩니다.
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국민공원으로서 시민의 산책이나 스포츠 등 일상적으로 이용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. 교엔 내에는 고쇼, 고쇼 외원의 풍경, 아오이 축제와 지다이 축제 등 오랜 역사 속에서 가꾸어진 황실(천황)과의 인연이 깊은 풍경과 행사 등이 남아 있어 교엔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역사적인 중층성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.
고대~근세
①고쇼가 축조되기 이전의 교토 분지는 하천이 빈번히 범람하는 땅이어서 느릅나무과 낙엽활엽수를 중심으로 한 식생(야마시로 벌판)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.
②794년(엔랴쿠 13년), 헤이안쿄(교토의 옛 이름)의 대궐 완성. 간무 천황(737~806)이 정한 이 대궐(천황의 거처인 고쿄)은 현재의 교토고쇼에서 약 2km 서쪽에 있었지만, 화재로 거듭 소실되어 주로 섭관가(천황의 직무를 대리할 수 있는 섭정과 관백으로 임명될 수 있는 집안)의 저택을 일시적으로 고쿄로 삼는 사토다이리(천황의 임시 거처)가 설치되었습니다.
③화재로 대궐이 소실되어 그 후에는 원래 위치에 대궐이 재건되지 않고, 1227년(안테이 원년), 현재 위치에 대궐을 창건했습니다.
④1331년(겐코 원년), 고곤 천황이 즉위하여 대궐이 고쇼가 되었습니다.
⑤1392년(메이토쿠 3년), 남북조가 통일되면서 대궐이 명실상부한 고쿄로 정해졌습니다. 메이지 시대에 이르기까지 약 500년간 천황의 거처였습니다.
⑥아즈치모모야마 시대(1568~1603)~에도 시대(1603~1867) 초기에는 고쇼를 중심으로 한 구게마치가 형성되었습니다. 1708년(호에이 5년), 호에이 대화재로 인해 남쪽 부분의 마치야(전통 상점 건축) 등이 소실되었습니다. 그 터에 구게 저택이 더 들어서면서 구게마치 부지가 확대되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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근대
⑦메이지 천황이 도쿄로 천행하면서 주변의 구게도 도쿄로 이동했습니다. 메이지 유신과 더불어 구게마치도 급속히 황폐해졌습니다.
⑧1877년(메이지 10년), 구게마치의 황폐화를 걱정한 메이지 천황이 교토부에 고쇼 보존・예전 모습 유지를 분부했습니다.
⑨1883년(메이지 16년), 저택 철거, 외주 석단 토루 공사, 도로 공사, 수목 식재 등의 대내보존사업이 완료되었습니다.
⑩1914년(다이쇼 3년), 다이쇼 천황 즉위식(다이쇼 대례)의 일환으로 겐레이몬오도리 길(교토고쇼의 정문인 겐레이몬에서 남쪽으로 난 큰길)의 폭을 넓히는 개량 등의 개수 공사를 실시, 현재와 거의 같은 교토교엔의 모습이 정비되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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현재
⑪1947년(쇼와 22년), 국민공원으로 만들기로 각의 결정되어 고쇼의 앞뜰로서의 경관 유지와 도시공원의 역할이 부여되었습니다.
⑫1949년(쇼와 24년), 교토교엔이 국민공원으로서 일반 공개되어 많은 사람으로 붐비게 되었습니다. 1951년에는 테니스 코트, 어린이 공원 등이 정비되었습니다.
⑬1971년(쇼와 46년), 후생성에서 환경청으로 소관이 변경되어 자연과 친밀한 접촉을 추진하는 것도 새로운 역할로서 중시됩니다. 1981년에는 데미즈노오가와 정비가 이루어졌고, 1986년에는 모자의 숲이 정비되었습니다.
⑭2005년(헤이세이 17년), 연회장 터에 교토 영빈관이 완성되었습니다. 그 뒤 해외에서 많은 내빈을 맞이하고 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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